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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공수교육대 역사 & 공정대대 이야기

글쓴이 : 양건율65 날짜 : 2020-04-26 (일) 03:27 조회 : 2532

해병대 공수교육 이야기

▲육군 공수교육대 수료식(특전사 기본공수 14기) 후 육군 공수단장(뒷줄 중앙 조문환 대령)과 해병대 수색대 하사관들,뒷줄 맨좌측 이근식중령(1962.8)

현 특전사의 모체인 제1전투단이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 육군 특전단에서 위탁교육을 시작으로 58년(4.15일) 최초의 공수교육이 시작되었고 해병대는 1961년 이후 제1전투단(현 특전사 모체)에서 실시하는 공수교육을 받았다.(공수기초, 강하 조장) 당시 공수교육은 해병대 수색부대의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이 되다가 해병대 수뇌부에서는 공정작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수색부대 외에도 공수훈련에 대한 인식이 확대된다. 이로 인해 피교육생인 장교후보생,하후생 교육기간 중 2~3주에 걸쳐 상남 훈련소와 포항 교육대에서 공수교육이 진행되었으나 여러가지 제반 사항이 여의치 않아 실강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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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으로는 상남 훈련소(진해)와 포항 교육대(후반기 보병 교육대)에서 공수교육대가 운영이 되었으나 공식적으로는 1968년을 그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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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북한(124군부대) 특수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국방부 훈련 1호에 의거 해병대 자체적으로 공수교육대(진해 상남 보병교육연대)가 발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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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곧바로 준비작업에 착수하여 해병대 월남전 참전 수색대 장교, 부사관 출신들을 필두로 한 교관단 25명이 구성이 되어 다음해인 1969년 10월 진해(해병대 상남 보병 훈련대)에서 창설을 맞이한다.(공수교육대장 소령 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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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공수교육 이수자들에 대한 강하 훈련과, 공수교육대 교관단들의 교육 체계를 잡아 나가면서 1970년 초 공수교육대의 이한종 소령이 교육대장으로 오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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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2년 6월 해병공수 1기(대위 김성웅등 122명)가 배출이 되고 이 인원을 중심으로 2연대에 공수중대를 창설하게 된다.

▲1972년 6월 해병공수 1차 수료 기념

이후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수정 작업이 진행된후 다음해인 1972년 8월 24일 대위 서정규등 73명이 해병대 공수 2차로 수료를 하게 된다.

1973년 10월10일 해군과의 통합으로 인해 해병대 내부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가줘오게 되는데 6.25와 월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교와 하사관들이 대거 전역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성이 되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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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공수 3차 교육생들인 중위 조용일등 72명은 교육 막바지에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하고 해군에 통합된 소식을 들으며 1973년 10월 30일 눈물의 수료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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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해병대 교육훈련단이 포항으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당시 공수교육대장인 라호원 대위 시절 수색대와 공수중대 외에도 보병중대는 물론 특과 병과에서도 공수교육 지원자를 받아 교육을 실시하는 토대를 마련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현재에도 수색대,공수교육대,공정대대 부대원이 아니어도 지원을 해서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 해군 첩보부대(UDU)와 해군 UDT 부대원들이 위탁교육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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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되면서 해병대 부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현실에서 1974년 이동용 장군(당시 소장)이 1사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솔선수범으로 기본 공수교육을 이수하는 등 해병대 장병들의 귀감이 되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해병대 1사단에 공정작전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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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먼저 이동용 장군은 각 연대에 공정대대를 창설하고(물론 공정대대 뿐만 아니라 해군과 해병대가 통합 이후 해병대 정체성 확립 작업의 일환으로 보병연대에는 각각 공정,기습,유격대대가 창설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당시 부족한 낙하 장비는 특전사 사령관에게 정식 협조 요청을 하여 공수 여단에서 낙하 장비를 빌려 강하를 하는 등 전사단 공정화를 위해 힘썼다. 하지만 해군본부 발령으로 인해 이동용 장군의 전사단 공수화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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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① 준장 이종태 강하 후(74.11.17), 소장 이동용 첫 강하후 (74.11.15)

② 소장 이동용 중위 김인식, 교육대장 대위 나호원 C-6A 탑승전(74.11.18),

③ 준장 이종태 기본공수 수료 교육대장 나호원 대위(74.11.14),강하전 브리핑 소장 이동용,대령 김명환,중위 김인식(7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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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30차 31차는 특이하게도 각각 3개 차수, 2개 차수로 입교일은 같으나 수료일이 다른 특이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소령 남인학 등 129명이 30차, 대위 이신성등 118명이 31차로 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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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공수교육대 교관(이영철, 김연한, 김용수 중사)과 특수수색대에서 (황봉섭 중사) 해병대 최초로 고공기본 교육(특전사 고공 기본 6기)을 이수하였고 1980년 10월에는 고공조장 5기 교육에 부사관 5명이(공수교육대 : 이영철,강남기,이명규,정성재 중사/특수수색대 : 황봉섭 중사) 이수하여 해병대 공정작전 및 특수작전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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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사관을 주축으로 같은 해 해병대 최초로 특전사 주관의 고공경연대회에 참가하여 해병대 공수 역사상 70년대가 가장 전성기라 할 수 있겠다.

▲1980년 특전사 사령관배 고공강하 경연 대회에 참가한 해병대팀

이후 해병대 공수는 70년대의 창설 멤버를 주축으로 이에 더해 당시 특수수색대와 MIU,공수교육대,해병대 공정대대와 각 부대에서 하사관으로 복무 중에 있던 이영철,김영휘,김재택,김영일,김진술,김광률,김동영,김연한 등 수많은 하사관들에 의해 70년대 후반과 80년, 90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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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여건상 각 계급별 필수보직(해당 부대에 TO가 없다면 다른 부대로 전출)수행과 1,2사단 부대들의 형편성을 위해 순환교류 근무와 도서지역 근무, 제한적인 항공기 사정등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500~1000회 이상의 강하 횟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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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해병대 공수교육대도 고공교육에 관한 과정을 개설하고자 특전사에 교관단을 파견하던 중 국방부로부터 해병대 공수교육 폐지 명령이 하달된다. 여러 이야기가 무성했으나 전두환 대통령이 해병대 1사단 방문 당시 해병대의 강하 모습을 보고 난 뒤라 많은 후일담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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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4차를 마지막으로 해병대 공수교육대는 폐지를 맞이하게 되고 이후 공수교육대는 담력 교육대로 개칭하여 명맥을 유지했으며 다만, 강하 교육 이수자에 대해서는 정기 강하 지원과 미 해병대와의 연합 강하, 수색부대의 강하 훈련은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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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94년 공수교육 재창설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초대 교육대장으로 김영일 준위가 임명되고 준비작업에 돌입한다. 공식 편제상에는 준위 1명, 중사 2명, 조교 2명 이였으나 실제 창설 준비에 참여한 인원은 10명 정도였다.(준위 1,원사1,중사3,병 5명) 창설 준비작업은 교육대장을 중심으로 각 부대에서 고공교육 이수자 와 100회 이상의 강하, 교관능력을 구비한 인원들을 선발하고 이들을 뒷받침할 조교 요원들을 실무에서 선발하여 교육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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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교들은 상당히 혹독하게 교육이 진행이 되었고 준비 기간 동안 이들은 강하 횟수 또한 20~30회가 넘는 인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기간 특전사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일 년여의 준비 끝에 1995년 10년 만에 해병대 공수교육대는 재창설을 맞이한다.

▲94년 해병대 공수교육대 교육대장, 교관, 조교 / 맨 오른쪽이 재창설 당시 공수교육대장 김영일 준위

▲좌측부터 조교 류태순,신상현 중사,박기호 중사,김진술 원사

95년 재창설 이후 공정대대를 주축으로 교육이 진행이 되었고 수색부대의 경우는 기존 그대로 특전사에서 위탁교육을 통해 공수교육이 진행이 되었다. 64차 이후로 중단되어 10여년만에 부활한 해병대 공수 65차는 대위 최훈열등 210명이 수료하였다. 당시 해병대 공수교육이 국방부 정식 인가가 나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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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해병대 기본 공수를 이수하고 30~40회의 강하 횟수와 낙포 과정까지 이수한 각 연대 공정대대 하사들이 강하조장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특전사에 위탁교육을 가려 했으나 특전사에서는 해병대 공수교육을 비인가 교육 기간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아 이로 인해 강하조장 교육을 받으려면 다시금 특전사에서 기본공수교육을 이수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95년 공수교육대 교육장면

당시 실무진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병대 측에서 특전사 교육단에 공문 하나 띄어 줬다면 무난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냐 하는 등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으나 승인이 나지 않자 대부분의 공정대대 하사들은 해병대에서도 강하조장 교육이 언젠가는 신설이 되지 않겠냐 하여 교육을 거부했고 일부 공정대대 하사들은 다시금 특전사에서 기본공수과정을 이수하기로 한다. 당시 교육을 수료한 공정대대 하사들은 "우리는 유학파 출신이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으며 이들이 2000년 이후 해병대 공수교육대의 계보를 잇는 주축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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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교육이 진행되던 초반 몇 년 동안은 강하 사고는 없었고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사고와 부상이 연이어 일어나기도해 교육이 잠시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차차 안정적인 교육이 진행이 되면서 97년부터는 부후생,장교후보생 과정에 기본공수과정이 신설이 되어 3주간 교육이 진행되었다.

▲95년 공수 지상 교육을 받고 있는 하후 236기 / 오른쪽 건물이 당시 하사관 교육대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해병대 공수교육대는 특과 병과는 물론 2사단과 6여단에서도 지원자를 받아 기본 공수교육을 이수할 수 있게 하였는데 당시 지원자가 너무 많아 중대별로 몇 명만을 선발하여 기본공수 교육을 이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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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5.19)에는 해병대 각 부대와 부후생 263기의 기본 공수 수료식 날 이들은 해병대 공수교육 100차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100차 기념식 날 역대 해병대 교관, 조교 출신들을 초청하여 이들 예비역들이 실강하를 하는 행사 까지 준비했으나 60~70대의 예비역분들의 고령화와 부상 등을 이유로 교육훈련단에서 허가는 나지 않고 지원자에 한해 막타워 강하만이 이루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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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국방부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은 해병대 공수교육대는 기본공수,낙하산포장,강하조장등 년 11회의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으며 해군 특수전여단에서도 2001부터 위탁교육을 들어왔다.

▲해병대 고공강하 90년대 ~2010년대

2000년 이후 각 연대의 공정대대에서는 치열한 경쟁 의식들이 있었는데 어디 공정대대가 무장강하를 했다면 어디 공정대대는 야간 무장강하를 하는 등 대대장들의 성향에 따라 달리 운영이 되기도 했으며 항공기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하 에서도 정기 강하는 한 달에 한 번 실시하는 공정대대 또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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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공수강하 조종술 시뮬레이터 장비가 도입(10대)되었는데 미국의 민간 스카이다이버용 시뮬레이터를 벤처 마킹하여 2009년 11월에 국내 업체에 의뢰하여 2010년 12월 개발을 완료하고 2011년 2월과 4월 기본공수교육자및 강하조장 교육과정에 교육생을 대상으로 사전 테스트를 거쳐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초기 전문 운영 교관은 이하이 중사(당시 계급)가 담당을 했으며 2차 사업의 주도적 역할은 주명호 상사(당시 계급)가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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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비의 가장 큰 효과는 강하 조종술 숙달과 프로그램상에 다양한 지형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 공정 요원들의 사전 침투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공수 강하 조종술 시뮬레이터 장비를 이용한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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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경부터 기구강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해인데 이는 기상으로 인한 항공기 지원이 용이하지 않자 공수교육대 교육일정과 실무 부대원들의 강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문제점이 도출이 되었기 때문 이였다. 교육훈련단에서도 이에 대해 의견 수렴이 공론화되면서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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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초창기에는 공수교육대 교관인 이상준 중사가 교육훈련단장 주관의 '해병대 기구강하장비 운영 계획 연구발표' 를 시작으로 특전사를 오가며 노하우를 전수 받았고 이후 이동주 상사외 1명이 바톤을 이어받아 특전사를 여러 차례 오가며 많은 노하우를 전수 받아 해병대 기구강하장비에 결정적 도입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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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인 2013년부터 기구 강하 장비 2기가 들어오고 이에 한기당 4명씩 8명이 편제가 되어야 하나 인원 충원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기구 강하 1기 : 윈치 조작 1명,도삭기 1명, 차량 운전 1명, 강하 조장 1명)이로인해 각 공정대대에서 교관을 선발하여 기구반을 구성하게 된다.(이동주 상사외 3명) 여러 차례 운용 테스트 후 2014년 1월 14일 취역식에서 시범 강하를 하였고 최초 기구 강하자는 정현욱 소령,이상준 상사,조교 두명등 4명이 성공적으로 강하한 이례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면서 차질 없이 교육일정이 진행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

▲기구 강하 2014년 6월 17일

2012년경 31대대에서는 평창지역 집단 강하를 계획하게 되는데 이는 70년대 중반 특전사가 마지막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강하 자료 획득을 당시 이동주 상사가 특전사 관계자를 만나는 등 어렵사리 자료를 획득하고 현지 정찰을 통해 부대 이동까지 진행된 상태였고 당시 사령부나 상급부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나 강하 당일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공군 항공기가 강릉 비행장에 해무가 끼여 착륙을 못하고 회양 하겠다는 통보가 온다. 당시 31대대 작전장교가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게 되나 일부 부사관들과 참모들은 조금 있으면 해무가 거치니 항공기를 조금 선회하여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나 권유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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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는 강하가 취소되어 공군 항공기는 김해로 회양을 하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대로 해무가 말끔히 거쳤고 31대대 부대원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작전장교는 강하 경험이 없는 비공수 교육자였다고 전해지며 대대장 또한 무리한 강하로 인한 사고와 부상을 우려해 한발 물러섰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이후 평창 지역 집단 강하는 현재까지도 진행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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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초기 강하 기종은 C-46 형의 항공기를 시작으로 U-6A, 공군의 C-123 이후 C-130, CN235, 육군에서 CH-47, 해군에서 UH-60, UH-1H 이외 미 해군, 미 해병대의 다양한 항공기를 이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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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해병대 공수교육대 재창설 이후 제 2 도약기를 맞은(2000~2020년대) 해병대 공수교육대를 이끈 주역들로는 교육대장 김정현 대위,현우식 대위,정현욱 소령,이근수 소령,정준영 대위,김재택 원사,서운호 준위,박수곤 준위등이 있고 교관들로는 정재우,김광석,김정관,김인배,이동주,이영재,공광남,이운우,최정윤,이남중,이하이,장대동,이상준,김경환,송승환,주명호,고 김상희 등 이외 수많은 부사관들이 짧게는 4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기간동안 공수교육대에서 헌신 하였다. 이들은 현재 공수교육대,수색부대,공정대대 및 해병대 각 부대에서 현역으로 복무중이거나(원사,상사 : 고 김상희 상사는 사망)전역한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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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2010년 이후 해병대 공수교육 발전에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장본인은 이근수 예비역 중령을 빼놓을수 없는데 대위,소령때 두번에 걸쳐 공수교육대장을 역임했다. 수색대에서 UDT 교육을 이수후에 소대장을 시작으로 보병부대와 공수교육대,수색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근수 소령(당시 계급)은 공수교육대장 시절 교육 시뮬레이터 장비 도입과 기구 강하 장비 도입등의 해병대 공수교육대의 크고 작은 사업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 또한 민간 아웃소싱 사업을 통해 고공교육을 전파하기도 하였는데 이당시 교육훈련단장이 이근수 소령에게 고공교육을 받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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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김재택 원사,김영일 준위등 70년~90년대 해병대 공수교육을 이끈 베테랑 부사관들이 전역하고 이후 세대인 김경환 원사,박수곤 준위등이 주역이 된다. 김경환 원사는 해병대 내에서 화물투하,의장 공중투하 능력과 노하우는 최고라고 정평이 나있으며 현재 32대대 주임원사로 복무중에 있으며 박수곤 준위는 2번의 D.I 근무와 수색대,공정대대,보병부대등을 두루 거쳐 2000년이후 해병대 공수교육대에서 가장 오랜기간 근무를(3번)하면서 교관을 시작으로 기구반장,보좌관,교육대장 까지 역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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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3일 해병대 공수교육은 200차를 맞이 하면서 공정 요원 3만명을 달성하는 해이기도 했으며

2020년 현재 송승환 준위를 공수교육대장으로 정예 공정요원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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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해병대 공수교육대 교관,조교 또는 그 발전에 힘을 보태셨던 모든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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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병대 공수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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