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경 31대대에서는 평창지역 집단 강하를 계획하게 되는데 이는 70년대 중반 특전사가 마지막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강하 자료 획득을 당시 이동주 상사가 특전사 관계자를 만나는 등 어렵사리 자료를 획득하고 현지 정찰을 통해 부대 이동까지 진행된 상태였고 당시 사령부나 상급부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나 강하 당일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공군 항공기가 강릉 비행장에 해무가 끼여 착륙을 못하고 회양 하겠다는 통보가 온다. 당시 31대대 작전장교가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게 되나 일부 부사관들과 참모들은 조금 있으면 해무가 거치니 항공기를 조금 선회하여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나 권유하는 상황이었다.
?
끝내는 강하가 취소되어 공군 항공기는 김해로 회양을 하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대로 해무가 말끔히 거쳤고 31대대 부대원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작전장교는 강하 경험이 없는 비공수 교육자였다고 전해지며 대대장 또한 무리한 강하로 인한 사고와 부상을 우려해 한발 물러섰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이후 평창 지역 집단 강하는 현재까지도 진행된 적이 없다.
?
창설 초기 강하 기종은 C-46 형의 항공기를 시작으로 U-6A, 공군의 C-123 이후 C-130, CN235, 육군에서 CH-47, 해군에서 UH-60, UH-1H 이외 미 해군, 미 해병대의 다양한 항공기를 이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95년 해병대 공수교육대 재창설 이후 제 2 도약기를 맞은(2000~2020년대) 해병대 공수교육대를 이끈 주역들로는 교육대장 김정현 대위,현우식 대위,정현욱 소령,이근수 소령,정준영 대위,김재택 원사,서운호 준위,박수곤 준위등이 있고 교관들로는 정재우,김광석,김정관,김인배,이동주,이영재,공광남,이운우,최정윤,이남중,이하이,장대동,이상준,김경환,송승환,주명호,고 김상희 등 이외 수많은 부사관들이 짧게는 4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기간동안 공수교육대에서 헌신 하였다. 이들은 현재 공수교육대,수색부대,공정대대 및 해병대 각 부대에서 현역으로 복무중이거나(원사,상사 : 고 김상희 상사는 사망)전역한 이들도 있다.
?
특히나 2010년 이후 해병대 공수교육 발전에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장본인은 이근수 예비역 중령을 빼놓을수 없는데 대위,소령때 두번에 걸쳐 공수교육대장을 역임했다. 수색대에서 UDT 교육을 이수후에 소대장을 시작으로 보병부대와 공수교육대,수색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근수 소령(당시 계급)은 공수교육대장 시절 교육 시뮬레이터 장비 도입과 기구 강하 장비 도입등의 해병대 공수교육대의 크고 작은 사업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 또한 민간 아웃소싱 사업을 통해 고공교육을 전파하기도 하였는데 이당시 교육훈련단장이 이근수 소령에게 고공교육을 받기도 했었다.
?
2000년 이후 김재택 원사,김영일 준위등 70년~90년대 해병대 공수교육을 이끈 베테랑 부사관들이 전역하고 이후 세대인 김경환 원사,박수곤 준위등이 주역이 된다. 김경환 원사는 해병대 내에서 화물투하,의장 공중투하 능력과 노하우는 최고라고 정평이 나있으며 현재 32대대 주임원사로 복무중에 있으며 박수곤 준위는 2번의 D.I 근무와 수색대,공정대대,보병부대등을 두루 거쳐 2000년이후 해병대 공수교육대에서 가장 오랜기간 근무를(3번)하면서 교관을 시작으로 기구반장,보좌관,교육대장 까지 역임을 하였다.
?
2014년 6월 13일 해병대 공수교육은 200차를 맞이 하면서 공정 요원 3만명을 달성하는 해이기도 했으며
2020년 현재 송승환 준위를 공수교육대장으로 정예 공정요원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이외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해병대 공수교육대 교관,조교 또는 그 발전에 힘을 보태셨던 모든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
1. 해병대 공수교육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