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설교] “하나님은 혼자 사시나?”
성경본문 - 사 6:1-8; 시 29:1-11; 롬 8:12-17; 요 3:1-17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성령강림 둘째 주일” 혹은 전통에 따라서는 “성령강림후 첫째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동시에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이기도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삼위일체, 그 의미가 신비하다기보다는, 이 개념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1. 천군천사를 거느리신, 복수(複數)로 표현된 창조주 하나님(성부)
“태초에 하나님(히브리어, ‘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라고 할 때 “하나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엘’(“신”)의 복수(“신들”)입니다. 문법적 복수 형태 때문에 때로는 창조의 신이 한 신이 아니고 여러 신들일 수 있다고 하는 추측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조하셨다”라고 하는 히브리어 ‘바라’ 동사가 3인칭 단수 동사이기 때문에 ‘엘’의 복수는 “신들 중의 신”, “으뜸가는 신”처럼 존엄을 나타내는 복수(複數)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하는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1인칭 복수 대명사 주어도 복수형태이고 “만들자”라고 하는 동사도 복수 형태입니다. 존엄의 복수로 설명되기가 어렵습니다. 기독교 쪽에서는 이것을 삼위일체 개념으로 설명하는 시도도 있습니다만, 한참 후대에 나온 삼위일체론으로 초기의 복수표현 신을 설명하려는 것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이사야서 6:8에서도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1인칭 복수 “우리”를 씁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 경우, 하나님과 하나님 둘레에 서 있는 천사들, 신적 존재들,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상의 메신저들을 전제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창조의 과정에 하나님 옆에서 창조하는 일을 직접 맡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의인화된 지혜 ‘호크마’가 있습니다.
22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23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24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5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6 주님께서 아직 땅도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이다. 27 주님께서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며, 깊은 바다 둘레에 경계선을 그으실 때에도, 내가 거기에 있었다. 28 주님께서 구름 떠도는 창공을 저 위 높이 달아매시고, 깊은 샘물을 솟구치게 하셨을 때에, 29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물이 그분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셨을 때에, 30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名工)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잠 8:22-30)
여기 “창조의 명공”은 히브리어 ‘아몬’의 번역입니다. '개역'에서는 이 히브리어를 아예 “창조자”라고 번역하고, 영어 번역들은 “master workman”(ASV), “an architect”(TEV), “the craftsman”(NIV) 등으로 번역합니다. 다 건축기술자들이란 말입니다. “지혜”(‘호크마’)의 직무가 “명공”(‘아몬’)인데,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왕래합니다. 그의 역할은 모두를 “즐겁게”,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30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31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잠 8:30-31). 저는 어제 이 설교 원고를 마무리할 즈음에 지혜의 명공 역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기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지혜”(‘호크마’)의 말을 되새기면서, 세상이 어려운 이 때에 예상 밖에, 하늘을 기쁘게 하고 땅을 기쁘게 하고 자기도 기쁘게 하는, 휴전선을 넘나들며 화해 중재 역할을 하는 한 메신저의 분주한 행보를 알리는 긴급 뉴스를 들으면서 얼마나 기뻤었는지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2. 우리를 초월해 계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시는 하나님
오늘의 본문 이사야서를 보면, 남 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본 비전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었습니다(사 6:1). 감히 범접 못할 초월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분 주위로는 ‘스랍’들이 주님을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사라프’ 의 문자적 의미는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존재”입니다. 아마도 이 피조물이 타오르는 불같은 외모를 지닌 것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구약의 다른 곳에서(민 21:6; 신 8:15; 사 14:29; 30:6) ‘스랍’은 독사를 가리킵니다. 아마도 그 외모가 독액을 분비하는 뱀 같은 모양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달리, 그 ‘스랍들’은 ‘나르는’ 뱀들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피조물이 지닌 돌진하는 재빠른 움직임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NET 주해). 창조주 성부 하나님은 이러한 피조물로 호위되어 있어서 아무나 다가 설 수 없는 초월해 계시는 분으로 이해됩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29:1은 하나님이 혼자 계시지 않고, 주위에